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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에미리트]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비행기에서 배웠다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7,596

장려상 / 해외취업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비행기에서 배웠다

 

 

 

이소정 [아랍 에미리트 | 에미리트 항공사 승무원]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누구를 만나든 5분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책에 나오는 글귀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친구도 많지 않던 한 아이가 이 세상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도 5분 이상 대화할 수 있는 어른으로 변화한 것은 나 자신에게도 놀라운 일이다. 지난 8년간 UN 다음으로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는 한 외국 항공사의 승무원으로 일하며 세계를 여행한 덕분이라고 하면 고개가 끄덕여질지도 모르겠다.

 

 

 

외교관에서 민간 외교관으로 꿈을 전향하다

 

 

나의 비행은 고등학교 시절, 야자 시간 교실이 답답하다며 복도에 책상을 들고 나가 모의고사 시험지 귀퉁이마다 습관처럼 기종도 불분명한 아주 작은 비행기를 그려 넣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비행기 옆에는 나는 세계로 간다는 말이 마법의 주문처럼 적혀 있었다.

대학생이었던 두 언니들의 유럽 연수, 외국에서의 교환학생 등은 고등학생이던 내게 크나큰 부러움이었다. 그리고 그 부러움은 더 큰 세상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고등학교 일학년 생활기록부에 적힌 장래 희망은 외교관이었다. 그러나 일 년 뒤 나의 장래 희망은 민간 외교관이라 불리는 승무원으로 바뀐다.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을뿐더러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내 손에 들려 있는 책은 늘 교과서가 아닌 여행기였다. 전 세계를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에 항공사 승무원으로 꿈이 정해지자 그에 맞춰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에 진학했다. 꿈이 빨리 정해진 덕에 남들보다 빠르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취업과 진로 교양과목을 들으며 취업을 준비할 수 있었다. 리서치 결과 국내 항공사보다는 외국 항공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내가 가장 가고 싶은 항공사인 두바이를 베이스로 한 에미리트 항공사를 목표로 잡았다. 어학연수를 갈 형편은 아니었으나 영어 실력을 늘릴 방법은 도처에 있었다. 외국 친구와 이메일을 주고받고, 좋아하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며 대사를 통째로 외웠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에 자원해 일을 하며 돈도 벌고 영어도 연습했다. 그러자 낯가림도 조금씩 없어졌고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3학년이 되자 아예 휴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에미리트가 아닌 작은 항공사라도 채용 공고가 나면 면접의 감을 익히기 위해 부지런히 다녔다. 면접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 대학생인 내가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았던지 계속 떨어지기만 했다. 실패는 성공의 반대가 아니라 성공의 과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비록 계속 실패하는 면접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천천히 성공하는 법을 배웠다. 어느새 면접이 익숙해진 나는 과감히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수천 명이 지원하는 한국보다 경쟁률이 낮은 가까운 홍콩에서 열리는 에미리트 항공사의 오픈 데이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홍콩에서 파리까지, 면접 어디까지 가 봤니?

 

 

결과는 참패였다. 이력서를 받은 면접관은 본격적인 인터뷰에 나를 부르지 않았다. 면접이 열리는 화려한 호텔 맞은편 게스트 하우스의 작은 방에서 나는 하루를 꼬박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고 경험도 부족했던 내가 면접에 떨어지는 것은 크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몇 년을 준비했으니 당연히 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홍콩을 경유하는 인도행 티켓을 샀기에 홍콩에서의 실패를 안고 인도 여행을 떠났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무리한 일정 때문이었는지, 황금 사원으로 유명한 인도의 암리차르에서 나는 며칠 심하게 앓아눕고 말았다. 그러면서 욕심을 버리고 좀 천천히 가도 된다고 나 자신을 다독이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바로 카타르 항공의 시험이 있었고, 처음으로 최종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수천 명의 지원자 가운데 총 60명이 최종 면접을 보았는데 그중에 40명이 합격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최종 면접을 보고도 안타깝게 탈락한 20명 중 한 명이었다. 충격적인 결과이긴 했지만 홍콩 경험 때문인지 빨리 털어내고 의외로 담담하게 또 다가올 다음 면접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해 여름, 파리에서 에미리트의 오픈 데이가 열린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 당시 에어프랑스 통역원으로 근무하던 언니가 나를 파리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번에도 떨어질 수 있다고, 면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유럽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다녀오자 마음먹었다. 2주 정도 프랑스 여행을 하고 면접 장소인 파리로 돌아오니, 한국에서 정장은 챙겨 왔으나 신발이 하이힐 스트랩 샌들밖에 없었다. 귀에도 피어싱을 세 개나 했고 머리도 포니테일로 묶고 갔다. 한국에서라면 복장에서부터 감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이 아닌 파리에 있으니 나다운 모습으로 가서 나답게 면접을 보자 마음먹고 당당히 면접장으로 향했다. 이력서를 제출하고 간단한 스크리닝을 거쳐 본격적인 면접은 서바이벌 식으로 진행된다. 여러 번에 걸쳐 다른 주제로 그룹 토론을 하는데 라운드마다 탈락자가 발생한다. 토론 후에는 영어 에세이 작성 시험이 있고 마지막으로 적성검사를 마치면 최종 면접 날짜와 순서를 받게 된다. 여러 명이 함께하는 그룹 토론의 경우 면접관이 참관하는 자리에서 토론을 하는데 토론의 주제와 발언의 적절성,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 참여 정도, 그룹 내 분위기 등이 골고루 채점 요인이 된다. 다행히 세 번의 토론을 무사히 마치고 매 라운드 후 집어든 쪽지에는 축하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영어 에세이와 적성검사까지 마치고 최종 면접 인터뷰 약속을 잡고나니, 아침에 시작한 면접이 저녁 9시경에야 끝나 있었다. 피곤과 설렘이 뒤섞인 채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면접은 파리에서, 합격 소식은 그리스에서, 건강검진은 터키에서

 

 

최종 면접은 두 명의 면접관과 21로 봤다. 파리에 나타난 한국인 지원자, 심지어 유일하게 불어를 못하는 지원자인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나도 신기했고 면접관도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최종 면접은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자리이기 때문에 떨리긴 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최대한 성심성의껏 대답하려 애썼다. 그리고 2주 뒤쯤 그리스 미코노스 섬의 한 PC방에서 합격 메일을 받고선 흥분한 나머지 모자를 놓고 나오고 말았다. 모자를 돌려주러 온 PC방 주인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나 에미리트 항공사에 합격했어요라고 했더니 그게 어딘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축하해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간단한 건강검진 결과를 먼저 보내 달라는 요청에 터키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의 도움으로 현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해서 보냈고 몇 주 뒤 나는 꿈에 그리던 유니폼을 입고 두바이에서 승무원이 되기 위한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은 비행기에서 배웠다

 

 

어떤 이들은 우리 직업을 단순히 차나 커피 혹은 치킨 아니면 비프 정도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럴 땐 비행기 문이 닫힘과 동시에 우리 승무원들의 역할이 무궁무진해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그냥 웃어넘기고 만다. 응급 환자 처치 요령, 불만 승객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 각기 다른 여러 나라의 영어 악센트를 알아 듣는 능력, 진정한 세계인으로의 거듭남,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직접 듣는 자국 역사, 세계 각국의 문화, 정치, 종교, 낯선 이에게 친절하라는 말의 의미, 나 자신을 브랜딩 하는 법까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은 비행기에서 배웠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거대한 비행기는 그 자체로 세상의 축소판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흔히 생각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다양하다. 결혼식에 가는 사람들, 허니문을 떠나는 사랑스런 신랑 신부, 사랑하던 누군가의 비보를 듣고 장례식에 가는 사람들, 가족을 뒤로하고 해외에 일하러 가는 노동자들, 일생을 기다려 온 성지순례객들, 유명 인사, 홀로 타는 어린아이, 갓난아이부터 휠체어에 의지한 연로한 승객까지 실로 다양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100여 개 나라에서 온 동료들이 있다. 지난 8년간 내가 본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삶의 모습들이었다. 비행기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여러 가르침을 주었다. 아트 스피치 대표 김미경 님의 책에는 직장은 원래 일과 배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니 부지런히 배우라는 조언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감사한다. 더 큰 세상을 보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으로 대학도 마치지 않고 덜컥 입사부터 했지만 그 결정은 한순간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8년 차 승무원이 된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내가 훗날 승무원이 아닌 무엇이 되더라도 나를 키운 8할은 비행이었다는 것이다. 비행기보다 더 훌륭한 대학, MBA를 나는 알지 못한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 가진 연료의 반을 쓴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내가 아는 벅찬 경험들은 모두 홍콩, 파리로 날아가면서까지 면접의 기회를 간절히 원하던, 내 꿈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 혹시 취업을 준비하며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지금 당신은 가진 연료의 반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당신의 비행기는 곧 이륙할 것이라고. 해외 취업을 한다는 것은, 꿈꾸는 것부터가 특별한 일이다. 당신의 비행기는 당신이 꿈꾸고 준비하는 만큼 높고 멀리 날아 당신을 원하는 장소에 데려다 줄 것이다. 연료를 가득 채우고 평소 정비를 게을리하지 말고 항상 관제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당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그러면 언젠가는 반드시 들려올 것이다. “Clear for take off”라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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