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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내가 가진 스펙 1호는 한국인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0,686

가작 / 해외취업

내가 가진 스펙 1호는 한국인

 

 

 

김진기 [싱가포르 | 북유럽계 은행 싱가포르 지점]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더 많은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으며 그 덕에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 싱가포르에서 금융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은행은 북유럽계 최대 은행이자 전 세계에서 선박과 해양 분야에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은행이며, 나는 선박·해양 금융 Shipping, Offshore and Oil Service 부서의 Relaiotnship Manager로 근무하며 한국과 외국선박 회사들을 상대로 선박 및 해양 투자에 관한 금융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스펙이 아닌 열정, 그래서 생긴 길

 

 

나의 최종 학력은 대학교 중퇴, 서류상으로는 고졸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미국에서 대학 2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곧바로 입대하였다.

제대하고 일용직 일을 하며 고시원에서 홍콩과 싱가포르로의 진학을 준비했다. 다행히(?) 홍콩의 대학에선 불합격 통지서를 받은 반면에 싱가포르의 대학에는 합격해 자연스럽게 싱가포르로 가게 되었다. 내가 싱가포르 생활을 시작했던 때에는 유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과외, 번역, 통역의 일을 넘치도록 할 수 있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생활은 가능했다.

일을 하다 알게 된 싱가포르인 친구가 졸업 후 한국계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방학이 시작되기 몇 개월 전부터 나도 인턴십을 지원하고자 이미 싱가포르에 있는 모든 한국계 은행과 수십 군데의 외국계 은행에 지원서를 냈지만 은행업무 경험도 없고, 졸업반도 아니라 어디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몇 주 동안 이메일과 전화를 하며 매달렸다.

기다림 끝에 그 친구의 도움으로 인터뷰를 보게 될 기회를 얻었다. 인터뷰에서 내가 중점을 두었던 것은 한국인 매니저와 싱가포르 직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급으로 방학 3개월 동안 일하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방학 동안 경력을 쌓을 생각으로 지원하였고 내가 맡고 있던 번역과 과외로 재정적인 부분을 채울수 있는 통로는 남겨 놓고 있었다.

금융회사들이 들어선 싱가포르 마천루 사이를 떨리는 마음으로 걸어 첫 출근을 하던 때를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처음 내가 하게 된 일은 한국에서 주재로 오신 분들의 통역 역할이었다. 그리고 딱 2개월째 되던 날, 나는 정직원 제안을 받았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나의 본격적인 행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무급인턴이 아닌 정직원으로 업무를 하게 되면서부터 나의 업무 분량은 상상을 초월하게 늘어났다. 과중한 업무 때문에 중간에 학업을 그만두었어야 했던 점은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인턴 때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업무들이 주어졌고, 시간이 지나며 책임도 생겼기에 참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고졸 신분으로 시작된 직장 생활이기에 내가 받는 임금은 내 또래의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정말 큰 괴리감을 느낄 정도로 낮았다. 업무를 배우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견딜 수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부담으로 남았던 게 사실이다.

 

 

 

길을 열심히 달리다 보니 내가 목표한 곳에 서 있더라

 

 

은행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어 하고 더 깊게 공부하고 싶었던 것이 선박금융이었다. 배한 척에는 작게는 몇백억에서 몇천억 단위의 투자가 이루어진다. 한국은 선박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선박금융을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은행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선박금융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싱가포르는 공채의 개념이 없다. 그래서 구직 혹은 이직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루트들을 통해서 직장을 구하게 된다. 싱가포르는 잡(job)시장이 활발하여 구인/구직 웹사이트나 헤드헌터의 활동이 굉장히 많지만 본인이 원하는 직장 및 업무에 항상 자리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가고 싶은 회사나 그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의 경우에는 세미나 등이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서 명함을 전달하며 대화를 했다. 이로 인해 전부터 헤드헌터와 은행 몇 곳에서 일을 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박금융 분야에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라 하면 서러워할 정도로 자부심이 높은 은행에서 느닷없이 커피 한잔 하자며 연락이 왔다.

조금은 스카우트 제안을 기대하고 갔지만 정말로 커피 한 잔하면서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만 나누다 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북유럽계 은행은 업무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용할 직원이 나머지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성향의 사람인지, 대화나 행동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지 등에 무게를 많이 둔다고 한다. 얼마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서 나를 고용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약간은 의기소침하게 나의 스펙에 대해 말했다. “졸업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당신이 팀플레이어이고 업무를 잘 배우고 잘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다른 것보다 한국 시장과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투자를 하는 데 한국과 은행의 통로가 되면 된다. 업무에 대한 전문성은 우리가 책임지겠다.”

나는 시가 총액 기준 유럽 내 5위 은행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러한 이유로 한국과 관련된 많은 업무가 자연스럽게 나를 통하게 되었다.

나는 여느 한국 사람들처럼 책임을 가지고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우리 직원들은 나의 일하는 방식이나 내가 하는 모든 행동, 말 등을 코리안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강남 스타일이 한창 유행할 때 나에게 덧붙여준 별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이름이 붙은 스타일이 아닌 코리안 스타일은 우리나라 모든 청년들이 가질 수 있는 별명이다.

얼마 전 한국에 많은 지점을 두고 있는 미국계 은행이 싱가포르에 코리안 데스크를 개설했다. 우리 은행의 경쟁 은행에서도 한국인 한 명을 스카우트하였다. 내가 싱가포르에서 봐 왔고 만나 본 수많은 한국인들은 본인이 있는 곳에서 인정받으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굳이 싱가포르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들이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이 지닌 열정과 재능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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