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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진출 성공수기

해외진출 성공스토리를 한눈에!

손으로 빚는 자동차의 세계

작성자
K-Move관리자
조회수
6,246

K-Move 성공수기집 우수상 / 해외취업

 

손으로 빚는 자동차의 세계

 

 

황정수 [독일 / 폭스바겐 자동차클레이 모델러]

 

 

 

나는 현재 독일(볼프스부르크) 폭스바겐에서 자동차클레이 모델러로 활동하고 있다. 부모형제와 떨어져 지낸 지 9년이 되었지만, 지금 내 곁에는 또 다른 가족이 함께하고 있다. 25살에 결혼해 31살인 지금,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3살짜리 아들이 있다. 아직 갈 길은 많이 남았지만, 지금까지의 내 경험이 해외취업을 준비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자동차 모델러가 생소한 분들이 많다. 하나의 자동차가 탄생되기까지 몇 년 동안 수많은 과정을 거치는데, 디자이너가 2D스케치를 만들면 그 스케치로 3D모형을 만드는 사람을 모델러라 한다. 쉽게 말해 자동차 디자인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현재 독일에는 약 200~250명의 모델러가 활동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극소수의 한국인들이 활동하고 있는 직업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해두자

독일에는 한국인 모델러가 네 명인데, 나를 제외한 세 명은 40대 중후반의 오랜 경력을 가진 분들이다. 이곳은 외국인 모델러의 경우 5년차 이상 경력자를 고용하는 시스템이라서 20대부터 독일에서 일한다는 건 꿈같은 일이다. 특히 나처럼 경력 1년차가 독일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건 거의 기적과 다름없다.

9년 전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해병대 제대 이후 대학교에 복학하는 대신 자동차 디자인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자동차 디자인으로 유명한 학교는 주로 미국, 일본, 독일에 있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마음속으로 정해둔 학교가 있었는데,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예술학교였다. 학비가 워낙 비싸고, 생활비까지 필요하기 때문에 부모님께는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유학자금을 모으기 위해 제대 후 1년 동안 하루에 세 개의 알바를 시작했다. 아침에는 신문배달, 점심에는 지하철 택배, 저녁에는 백화점 가판대 판매를 했고 그렇게 1년 동안 열심히 모은 결과 통장에 3천만 원이 넘게 모였다. 이렇게 돈을 알뜰하게 모을 수 있었던 건 지금의 아내의 역할이 매우 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첫사랑으로 만나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준 여자 친구를 한국에 두고 떠나게 됐지만, 우리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난 꼭 성공하고 싶었다.

입학을 위해서는 우선 영어시험에 통과해야 했다. 9월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합격하려면 매일 밤을 새며 공부해도 부족해보였다. 다행히 5개월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한 만큼 좋은 결과가 찾아왔다. 원하던 학교에서 합격통지서를 보내준 것이다. 한국에서 다닌 학교의 학점을 인정받았고, 일부지만 졸업할 때까지 포트폴리오 우수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나의 꿈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외취업을 목표로 한다면 반드시 그 나라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어학연수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실력이 뛰어날수록 높은 레벨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빠르게 습득할 수 있고 그만큼 시간과 돈이 절약되는 지름길이다. 만약 예술, 디자인 분야로 해외 진출을 하고 싶다면 자신만의 특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디자인 분야에서 자신의 프로필은 곧 포트폴리오다. 포토폴리오 하나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최고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 실력을 테스트할 상황이 갑자기 찾아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다.

내가 다닌 학교는 매학기 여러 자동차회사 매니저들이 학생들의 작품을 보러 방문했다. 마음에 드는 학생에게 면접의 기회를 주고 인턴십과 취업의 길을 제공해주는 좋은 시스템이다. 난 절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고, 쉬지 않고 작업하면서 나의 실력을 쌓아나갔다.

 

더 좋은 길이 보인다면 과감히 선택하라

나는 스스로 자동차 디자인이 적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부전공 수업 중에 클레이(흙과 비슷한 재질)로 자동차 모형을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그 작업이 유난히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은 클레이 작업이 너무 하고 싶어져 밤새도록 작업실에서 지내기도 했다. 담당 교수님은 작업하는 과정을 보더니 월등한 공예 실력을 갖고 있다며 전공을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그게 과연 올바른 길인지,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담당 교수께서는 자신이 원하던 길을 가다가도 또 다른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다. 내 인생의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교수님의 조언대로 공예과로 진로를 바꿨다. 공예과에는 자동차 모델링을 비롯해 다양한 공예분야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만들 수 있었다. 내가 만든 작품은 갤러리와 학교에서 전시하고 판매도 할 수 있었다. 도자기에 관심이 많은 미국인들은 내 작품을 높이 평가했고, 고가로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가난한 유학생활 속에 찾아온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 무렵 나는 8년의 연애 끝에, 25살에 부부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결혼할 때 아내에게 제대로 된 선물 하나 해주지 못한 게 제일 마음에 걸렸지만 취직하면 반드시 갖고 싶은 건 모두 사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공부했다.

4학년 마지막 학기가 되자 모두들 취업준비로 바쁘게 지냈다. 나는 2학년 여름부터 백 군데가 넘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나라별로 큰 회사 작은 회사 상관없이 모두 포트폴리오와 함께 지원했다. 외국은 우리나라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처음에 외국에 온 사람들은 일처리가 너무 느려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원한 회사에서 1년 후에 연락이 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연락이 없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간혹 친절한 취업당담자는 지금은 자리가 없지만 오퍼가 생기면 바로 연락을 주겠다고 답장을 해주기도 한다. 담당자의 메일주소를 반드시 보관하고, 수시로 안부인사를 건네는 게 좋다. 담당자는 나를 또 한번 기억하게 되어 오퍼가 생기면 연락을 해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외국 친구들과 연락을 꾸준히 해야 한다. 해외취업도 추천제도가 있는 회사가 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 학기, 우리 부부가 간절히 바라던 아이가 생겨 기뻤지만 걱정부터 앞섰다. 취업준비로 매일 새벽에 나가 밤 11시에 들어왔다. 아내는 심한 입덧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차가운 욕실바닥에 누워 구토만 하였다. 먼 타국에 나만 믿고 와서 고생하는 아내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난 그날 뱃속에 아이와 아내를 위해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크라이슬러와 토요타에서 포트폴리오를 지참하고 인터뷰를 보러 오라는 기쁜 소식을 받았다.

 

해외취업 시 비자 정보는 철저히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처럼 이곳에서도 심사위원이 질문지를 들고 면접을 본다. 완벽한 영어실력은 아니었지만, 6명의 심사위원에게 이곳에서 꼭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포트폴리오에 대한 설명과 작업과정 그리고 이 회사에 오고 싶은 이유를 물었다. 나는 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모델러가 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또 사랑하는 와이프와 뱃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두 군데 회사 면접이 끝났고, 일주일 후에는 3시간 동안 작업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테스트가 있었다. 그날 나의 손은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았다. 하루 만에 끝내도 힘든 작업을 2시간 반 만에 끝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후 크라이슬러에서 취업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너무 기쁘면 눈물도 안 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입사를 축하한다’는 문구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속에 나는 크라이슬러에서 한국인 최초 모델러로 활동하게 되었다. 서류에 사인을 한 뒤에 토요타와 독일 폭스바겐에서도 연락이 왔다. 사실 그때 더 좋은 작업환경과 보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임신 중기부터 임신중독증세가 심해져 한국에서 출산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화로 듣게 되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일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무렵,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문제가 닥쳤다. 미국에서는 유학생에게 비자가 만료되면 취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주는 비자가 있다. 나는 취업 시 취업비자로 바꿔 줄 수 있다는 조건 하에 입사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매니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한국인들이 H-1B비자를 신청할 경우 디자이너와 달리 모델러들은 비자를 발급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H-1B는 쿼터가 적용되기 때문에 접수기간이 정해져 있어 내년 4월이나 10월에 접수할 수 있다고 했다. 이미 12월이라 비자 접수기간은 끝나버렸고 내년 4월에나 신청할 수 있지만 확실하게 나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한국인 모델러를 처음 고용한 회사로서도 당황스러운 결과라고 했다. 가까운 캐나다의 모델러들은 쉽게 나오는 비자를 한국인에게는 주기 힘들다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난 망연자실 넋 놓고 있을 수만 없었다. 그동안 연락을 하고 지낸 매니저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비자문제를 확실히 해결해줄 수 있는 회사를 찾기 위해 2개월 동안 수많은 담당자들과 메일을 주고받았다. 3개월 만에 독일 폭스바겐에서 연락이 왔다. 비자도 해결해주고 보험과 급여조건도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사실 나는 젊은 시절을 보낸 미국에서 꿈을 펼치고 싶었다. 독일로 출국하기 전날까지 회사 매니저는 비자문제를 최대한 해결해보겠다고 했지만, 4월에 승인을 받지 못하게 되면 두 군데 모두 놓쳐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틈틈이 독일에 대해 알아보니 미국보다 세금이 많은 대신 사회보장이 확실해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좋은 기회가 있더라도 두드려야 열린다

폭스바겐으로 취업이 결정된 후 나는 한국으로 들어가 너무나 그리웠던 7개월이 된 아들과 양가 부모님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 가족은 낯선 나라 독일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독일은 집구하기가 무척 힘든 나라다. 아무 이유 없이 동양인은 싫다고 거절당한 적도 있었다. 독일에 취업을 원한다면 2~3개월 전부터 집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독일어를 처음 들었을 때 강한 억양 탓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내가 일하고 있는 팀은 영국인들로 구성돼 있어 거의 영어를 사용했지만 상황에 따라 독일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특히 독일은 서류를 많이 작성해야 하고, 공공기관에 갈 일이 많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갈 때도 독일어를 해야 한다. 물론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현재 나는 3년 후에 출시될 자동차를 작업하고 있다. 아주 정교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섬세함이 필요하다. 1mm의 오차를 만들지 않도록 클레이와 툴을 이용해 작품을 만든다. 얼마 전 내가 맡은 차가 쇼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경력 15년차 영국인이 한 작업보다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독일에 와서 한 단계 더 성장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낀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힘들고 지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한국에 계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유럽 전 지역을 여행하는 상상을 한다. 뚜렷한 목표의식과 의지력을 갖는다면 어떤 일이들 해결해나갈 수 있다.

아무리 세계가 발전하고 기술이 진화해도 그 중심은 언제나 사람이다. 기회의 문은 두들겨야 열린다. 노력의 결실은 반드시 열매를 맺어 활짝 피게 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문화 차이와 언어 문제 그리고 향수병이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해외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자 선택 받은 일이다. 한국인은 세계적으로 부지런함과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길 바란다. 그리고 외국은 학력을 우선시 하는 곳이 아니다. 그 사람의 열정과 풍부한 감성을 더욱 하게 생각한다. 후회하지 않도록 스스로의 삶을 디자인하길 바란다.

현재 살고 있는 볼프스브루크는 구자철 선수가 소속되어 있는 곳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독일인들과 함께 어울려 응원가를 외치며 응원한다. 낯설기만 했던 독일이 이제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스케치북에 자동차를 그렸던 꼬맹이가, 폭스바겐 자동차 모델러로 활동하게 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나를 닮아 자동차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들과 한없이 부족한 나를 15년 동안 믿어준 사랑하는 나의 아내 그리고 언제나 응원해주시는 한국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이른 아침 출근길에 나선다. 내 손으로 만든 자동차를 전 세계인들이 타고 나닌다고 생각하니 한국인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자동차 모델러는 경력이 쌓일수록 더욱 인정받는 직업이다. 이곳에서도 50~60대 모델러들이 활동 중이다. 그리고 5년 이상 근무하면 영주권을 자동적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주기 때문에 비자를 매번 다시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앞으로 20년 후쯤 나는 모델러가 되고 싶은 한국학생들을 위해 전문적인 학습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Profile

황정수는 현재 독일에서 폭스바겐 자동차 클레이 모델러로 활동하고 있다. 꿈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다면 그만큼 노력하게 되고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해외취업의 경우 비자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으므로 철저히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세계적으로도 부지런함과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는 한국인이라면 어디서든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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