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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Asante sana, Tanzania

작성자
서재민
조회수
3,378

장려상 / 해외봉사

Asante sana, Tanzania

 

고유정 [탄자니아 | 아동보건사업 봉사단원]

 

 

지금은 길게만 느껴졌던 1년 중 벌써 9개월이 지났다. 나는 자주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 다양한 근황을 전해 드렸다. 6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즈음에 어머니께서 통화 중에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니 이젠 널 보내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그 시간이 네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이 말씀은 내 마음에 깊게 와 닿았다. ‘나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참 뿌듯했다.
이제 해외봉사는 한순간의 경험 그 이상으로 어느새 나의 길이 되었고 내가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해서 이 길을 걷고자 한다. 몇 년 전 처음으로 꾸었던 꿈처럼 내 전문성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참된 간호사가 되고 싶다.

 

 

Turning Point, 그리고 시작

 

 

인생에 자신만의 ‘Turning Point’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말 그대로 진짜 인생을 뒤바꾸게 된 그러한 순간이 나에게는 있었다. 18살, 고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교실 앞 게시판에 붙어 있는 ‘단기해외봉사 지원자 모집’ 안내문을 보게 된다.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는데 그 종이 한 장에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그 다음해 겨울, 나는 첫 해외봉사로 라오스에 가게 된다. 내 삶의 전환점은 그 곳에 있었다. 라오스의 한 작은 마을 속 모든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순탄치 않은 청소년기를 보내며 단 한 번도 진정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그 짧은 기간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복의 연속이었다. 한창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그 봉사를 계기로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의료인이 되어야겠다는 꿈이었다.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내 힘을 보태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나는 세계 곳곳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료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지닌 채 간호학도가 되었다. 입학 후에도 꾸준히 대학생이 할 수 있는 해외봉사를 찾았고 대학교 2학년 여름과 겨울에 각각 캄보디아, 인도로 단기해외봉사를 다녀왔다. 먼 타국의 모든 것은 여전히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점점 더 큰 도전을 하고 싶어졌다.


막연히 꿈만 꾸었던 장기해외봉사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것도 그 때쯤부터였다. 2주 남짓의 단기해외봉사는 언제나 귀중한 경험이었고 행복했지만 현지인들에게 나는 언제나 잠깐 찾아오는 ‘손님’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손님이 아닌 친구이고 싶었다. 국적은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교 3학년이 된 후부터는 장기해외봉사를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가장 싫어했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수십 번 자기 소개서를 고쳐 쓰며 면접을 보러다닌 결과 22살 겨울에 나는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에 합격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아동보건사업을 하는 국제 개발 NGO의 봉사 단원으로 1년 간 일하게 된 것이다.

 

 

Habari(Hello), Tanzania!

 

 

난 사실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없었다. TV에서 후원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광고를 보면 항상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울고 있고, 물이 부족했고, 깨끗하지 않은 환경에서 불행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프리카는 다 그렇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지하고 부끄러운 생각이다. 

 

 2015년 2월, 도착한 아프리카 탄자니아는 나에게 너무나도 낯설기만 했다. 온 몸을 휘감는 뜨거운 공기, 왠지 꺼려지는 음식들 그리고 가장 낯선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외국인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탄자니아 사람들의 눈빛은 영영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모든 것에 익숙하지 않은 채로 바로 단체의 업무에 투입되었다.

 

내가 맡은 일의 주 업무는 의사, 간호사와 함께 오지 마을로 가서 왕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 달에 10번 이상 마을로 나가야 하는데 매번 왕복 2~3시간 차를 탔고 비라도 오는 날에는 진흙길이 물바다가 되어 차가 빠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직원들이 다같이 맨발로 차에서 내려 진흙탕에 빠진 차를 밀었다. 그렇게 도착한 오지 마을에서는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아픈 아이들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아이들을 진찰하고 약을 주고 보건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해외에서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그렇듯이 탄자니아에 온지 두 달쯤 되었을 때 나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모든 것이 힘든 시기였다.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의 생활이 내가 꿈꿨던 해외봉사와 달랐기 때문이다. 단기해외봉사에서는 항상 좋은 면만 보였다. 일시적인 업무는 언제나 성공적인 듯 보였고 함께 하는 사람들도 많고 매일 매일이 유쾌했다. 하지만 이곳의 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를 가라앉게 했다. 익숙해지지 않는 낯선 외로움에 한국이 더 그리워졌고 스마트폰 속의 사람들에 집착했다. 오지마을로 나갈 때면 이어폰을 꽂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내가 원했던 일을 하고 있으면서 힘들어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마을로 나가는 차 안에서 문득 파란 하늘과 드넓은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해맑게 뛰어 노는 아이들이 보였다. 시원한 바람을 크게 들이쉬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 마디, “아~ 좋다.” 그 말을 시작으로 정말 많은 것이 좋아졌다. 이어폰을 빼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서툰 스와힐리어를 시작했다. 내가 먼저 다가가면 탄자니아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을 열어 받아주었고 금세 친구가 되었다. 더 이상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지치고 피곤한 아침에도 웃으면서 먼저 활기찬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 어느새 그 날도 좋은 시작을 하고 있었다.

 

마음이 밝아지니 탄자니아를 바라보는 시야도 밝아졌다. 이곳에 오기 전 가졌던 많은 편견들은 정말 편견일 뿐이었다는 것을 자주 깨닫는다. 오지마을에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흙으로 지어진 작은 집에서 살고 있다. 문도 창문도 없이 그저 뻥 뚫려있고 집안의 바닥도 밖의 바닥과 다르지 않은 집이다. 물론 전기도 없고 물을 구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절대 아니다. 물질은 부족해도 오히려 마음은 더 여유로워 보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하고 자식들을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이웃끼리는 가족만큼 돈독하다. 탄자니아에 오기 전 탄자니아 체류 경험이 있는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 사람 사는 곳이야. 다를 것 없어.” 얼핏 보면 참 많이 달라 보이는 삶이지만 정말 다 사람 사는 곳이었다. 선진국과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Tutaonana tena!(We will meet again!)

 


탄자니아에 오게 되었을 때 부모님은 언제나 그렇듯 내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해주셨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여전히 어리기만 한 딸을 아프리카 땅에 혼자 보내려니 걱정도 많이 되셨던 것 같다. 막상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어머니께서는 “그냥 보통 대학생들처럼 평범하게 살지...”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럴 때면 잘할 수 있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쉽사리 걱정이 가시지 않는 듯 해보였다. 지금은 길게만 느껴졌던 1년 중 벌써 9개월이 지났다. 나는 자주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 다양한 근황을 전해 드렸다. 6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즈음에 어머니께서 통화 중에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니 이젠 널 보내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그 시간이 네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이 말씀은 내 마음에 깊게 와 닿았다. ‘나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참 뿌듯했다.
이제 해외봉사는 한순간의 경험 그 이상으로 어느새 나의 길이 되었고 내가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해서 이 길을 걷고자 한다. 몇 년 전 처음으로 꾸었던 꿈처럼 내 전문성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참된 간호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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