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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나만의 약점을 이기면, 나만의 스토리가 된다

작성자
서재민
조회수
6,897

장려상 / 해외취업

나만의 약점을 이기면, 나만의 스토리가 된다

 

 

김은혜 [아랍에미리트 | ETIHAD AIRWAYS]

 

 

어쩌면 사회적인 편견으로 보면 나의 사회복귀는 생각지도 못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같이 평범하고 나이 많은 지원자가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이라는 이름에서, 또한 엄마라는 이름에서 갖게 하는 성숙함과 강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갖고 있는 약점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나만의 스토리가 되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이 말의 의미조차 몰랐던 거 같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할 만큼 값진 것이다. 그 고생들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적금처럼 하나 둘씩 쌓여 여러분의 미래에 날개를 달아주고 더 높이 더 오래 날수 있게 도와줄 동반자가 될 것이다. 

 

 

Q. 아이와 떨어져 살면 보고 싶지 않겠어요? 어떻게 애기 엄마가 승무원의 직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Are not you going to miss your baby? how do you manage between being cabin crew and mother?)
A.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승무원이 되서 외국에서 산다면 아이가 너무나 많이 보고 싶을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직업과 가정의 좋은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프로페셔널한 승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특별한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가족 그리고 특히 저의 아이가 보고 싶고 외로울 때마다 제가 목표한 저와 저의 가족의 더 좋은 미래를 생각하고 달려가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저의 초심을 기억하겠습니다. 이 다짐을 기억하며 제가 하는 일에 애정을 가지고 가족에게도 당당한 멋진 아내이자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위의 인터뷰 내용은 지금은 전 직장이 되었지만 2살 아이가 있는 30대 아기 엄마를 뽑아준 고마운 나의 첫 번째 항공사의 승무원 면접 때 마지막으로 받은 질문이다. 그렇게 첫 번째 항공사 AIRASIA X(에어아시아 엑스 항공)에서 2여 년 일하고 지금은 ETIHAD AIRWAYS(에띠하드 항공- 아랍에미리트 국영항공사)의 객실승무원으로 아부다비에서
살고 있다. 나는 오늘도 5살 사랑하는 아이를 가슴 한 켠에 다른 한 켠에는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품으며 하늘을 나는 34살 외국항공사 한국인 객실승무원 김은혜이다. 어쩌면 많이 돌아왔고 또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조금은 특별한 해외취업 스토리를 들려드리고 싶다.

 


[해외취업 계기] 제 1장 내 인생의 결정적 한 순간

 

 

나는 29살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외국계 회사에서 비서로 있던 나는 출산으로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다. 계약직이기 때문에 산후 휴가신청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열심히 몸 바쳐 일한 회사를 그렇게 억울하게 나오게 되었다. TV에서 팔짱기고 보기만 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아이가 자주 아프기 시작했다. 첫 돌이 되기도 전에 까무러치게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 총총걸음으로 응급실을 내 집 드나들 듯 해야 했으니까. 신생아이기에 실비 보험 하나 없이 1인실 병실을 사용해야 했고 남편의 벌이가 고정적이지 않아 맞벌이를 해야만 하는 나로서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참으로 한 순간 한 순간이 위기였고 그때 내 나이 겨우 서른이었다.

 

모든 것이 막막하다가도 또 금방 나아서 해맑게 웃는 아기를 보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와중에 나는 우연히 아이를 담당했던 여의사 선생님과 사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제 막 산후 휴가에서 돌아왔다며 아이가 자기 아이와 동갑이라고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대해 주셨다. 그때 그 흰 가운을 입고 엄마로서 당당히 일하는 그 선생님이 왜 이리 멋지게 보이던지. 해고 당한지 얼마 안 되어 의기소침해 졌던 것도 있었지만 아이가 아플 때 경제적 부담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무능한 엄마인 것 같아 4개월짜리 아이 앞인데 부끄럽고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진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속 선명한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 경제적으로 힘이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 순간, 나는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던 숙제를 펴보듯 처녀 적 꿈을 펴 보았다. 그것은 바로 결혼으로, 출산으로 접어둘 수밖에 없던 외국항공사 승무원이라는 꿈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난 30대 애도 있는 아줌마고 아직 출산 부기도 안 빠졌는데. 질문과 의심이 많았지만 품에 안겨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보니 대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이상한 큰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그래, 맞아, 나는 이제 고작 30살이야! 몸 건강하고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진 않지만 연습하면 되잖아!’ 나는 그렇게 병원에서 돌아오던 날 약을 먹어 곤히 잠든 아이 앞에서 아무도 모르게 승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해외취업 준비]제 2장 달려라 엄마

 

 

비행기는 상공으로 날기 전 활주로에서 시속 약 600km로 달린다. 이것은 현재 세계적으로 지상에서 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라고 한다. 나는 그때 이후 남에게 말도 할 수 없는 날개를 가슴에 품고 남들보다 한참 뒤처진 격차를 좁히기 위해 한 시간을 열 시간처럼 달렸다. 그때 당시에는 한국 항공사에선 명목적인 20대라는 나이제한이 있었고 외국 항공사에서도 30대가 넘어 승무원에 합격한 사례는 흔치 않았다. 특히 아기 엄마로서 합격한 경우는 전무후무했다. 그래서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호주대학에서 호텔경영을 졸업한 나는 그래도 무엇보다 영어에는 자신이 있었다. 나만의 전공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외국항공사를 목표를 하기로 했다. 아직은 아기가 어리기 때문에 외국항공사지만 한국이랑 가까운 동남아시아 쪽 항공사를 위주로 준비했다. 일단 4개월 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파트타임으로 맡기기로 했다. 나는 10시-12시까지 신촌에 있는 승무원 면접대비 스터디에 참여해야 했기에 9시부터 2시까지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겼다. 지하철 오가는 시간은 나에게 독서실이며 식사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실직한 나에게는 돈과 차비를 아껴야 했기에 아침과 점심은 언제나 편의점 김밥 1줄로 대신했고 쟁쟁한 20대 친구들과 경쟁하려면 면접 답변, 예습복습을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 했다. 남편과는 주말부부였기에 4개월 된 아이를 주중에는 혼자 봐야 했다. 때문에 집안일에 아기 돌보기 모든 것을 해치우고 나면 아이와 같이 쓰러져서 9시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모유 짜놓기, 아기 젖병 삶기, 집안일, 그 외 스터디 시간까지의 과제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꿈꾸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의 저자이기도 한 김미경 강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말 절실한 일이 있으면 새벽 4시에 일어나 보라고. 4시라는 시간은 절박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만이 깨어날 수 있는 기적과 같은 시간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절박한 나의 꿈이 4시 알람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일어났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힘들고 지치기도 했지만 준비하는 그 한 순간 한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내 삶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가장 행복하게 살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승무원이 되는 길은 그리 평탄하지 만은 않았다. 1차 면접을 20번도 넘게 떨어진 것 같다. 보통 승무원 면접은 3차까지 있다는 걸 감안하면 나는 승무원의 문턱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했던 셈이다. 나의 나이와 기혼여부 때문인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20대의 훨씬 예쁘고 쟁쟁한 지원자도 많은데 나이 많은 아줌마를 뽑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1차 인터뷰 통과도 못한 내가 어느 순간에는 심각하게 주눅이 들곤 했다. ‘열심 가지고는 사회적 편견을 이겨낼 순 없겠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했던 나의 부정적인 생각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거 같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30대 아줌마지만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진 못하지만 나만의 무기를 만들고 내가 뽑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뚜렷하다면 뽑힐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인터뷰의 답변을 좀 더 진정성을 담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오히려 내 약점일수도 있던 엄마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것이었다. 아무리 교과서처럼 그럴싸한 답변이라도 면접관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한 답변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 매번 최종면접마다 아기문제로 문제가 되어 떨어졌지만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절실하고 엄마로서의 승무원이 더 강할 수 있다는 점을 일관성 있게 어필했다. 그렇게 어렵게 1차 면접, 2차 면접까지 통과했고 최종면접까지 통과했다.

 

최종합격 결정이 나고 나는 아이를 얼싸안고 한 시간을 넘게 펑펑 울었다. 그때 그 눈물은 아마 합격의 기쁨보다는 열심히 했던 최선을 다했던 나에게, 또 엄마 없이도 잘 놀아준 아들에게, 말없이 나를 믿어준 남편에게도 너무 고마워서 흘린 눈물일 것이다.

 

 

[해외취업 후 이직]제 3장 더 큰 세상 더 큰 날개

 

세계 최고의 저비용 항공사에서 풀 서비스 항공사로서의 이직

 


에어아시아 엑스 항공은 세계최고 저비용(LCC) 항공사이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비행하고 여행하면서 국제 서비스인으로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출 수 있었다. 저비용항공사는 서비스보다는 안전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기내에서 스낵이나 음식을 유료로 판매해야 한다는 경영방침이 있다. 

  

어느 날, 나는 항공사를 찾아오시는 손님을 대접하는 느낌이 아닌 그냥 승객으로 대한 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배운 좋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풀 서비스 항공사로 이직하여 서비스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배워보겠다는 더 큰 날개를 품게 되었다.


에어아시아 엑스 항공의 한국인 승무원은 보통 4회 정도의 인천 비행을 받는다.(스케줄마다 차이는 있다.) 밤샘 비행으로 한국에 도착하게 되면 아이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아이를 재우고 밤 11시에서 12시까지 주 4회 전화영어 과외를 받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화장하고 비행 준비해서 공항에 7시 반까지 도착한다. 외항사의 특성상 주요 거점이 말레이시아이기 때문에 외국 거주 시에는 토익공부, 영어인터뷰준비 등 계획을 세워 실천하려고 했다. 대부분의 항공사는 전직 승무원에 국한 없이 나이와 기혼여부를 중요시 한다. 하지만 외국항공사의 몇몇 항공사는 나이나 스펙보다는 자기 실력을 중요시 하는 항공사 들이 있다. (보통 신생항공사가 그렇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도쿄에서 ‘에띠하드 항공 승무원 채용공고’를 보았다. 에띠하드 항공은 이력서와 에세이를 인터넷으로 접수하면 서류심사 합격자에 한해서 면접을 볼 수 있는 Invitation(초대장)을 받을 수 있다. 현직 승무원으로서의 상공 전선에서 배운 점과 나만의 좋은 서비스의 대한 정의를 잘 접목하여 에세이를 작성했고 이력서도 정성껏 작성하여 에띠하드 인사팀으로 보냈다. 3일 후에 서류가 통과되어 초대장을 받았다. 그렇게 며칠 후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일본 도쿄로 면접을 보기 위해서 날아갔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160명에 가까운 한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여러 국적의 지원자들이 있었다. 나는 한 시간 정도 일찍 면접장에 도착했었고 수많은 훌륭한 지원자들 사이에서 어떤 나만의 차별함을 강조 하여 나를 어필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로, 160여명의 지원자가 같은 패턴을 말할 때 조금은 다르게 말해야 할 것이며 다른 인상으로 접근해서 나의 차별성을 가지고 잊히지 않는 첫인상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두 번째로, 나의 장점이 무엇일까? 30여 년 사는 동안 정말 나의 솔직한 장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걸 찾아서 어필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그 동안 힘들게 준비했던 나의 노력들과 고생하는 가족을 떠올렸다. 지난 일 년 동안 더 멋진 서비스인이 되고자 노력했던 그 모든 물거품으로 만들기 싫었다. 그냥 경험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의 나약함을 다 잡았고 “그래 오늘만큼은 하고 싶은 말 떨지 말고 다 하고 오자” 그렇게 다짐했다.

  

1차 면접은 이력서를 면접관에게 접수하고 가벼운 토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1차 면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첫인상은 3초안에 결정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이 첫인상이 내 면접 전반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퍼스트 클래스의 승무원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공손한 말투와 자세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나의 작은 떨림과 직업에 대한 강한 열정이 면접관님에게 긍정적으로 전달되었을 때 나에게도 기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1차에서 160여 명 중에 35명만이 통과하였고 2차 면접은 20명 정도 통과하였고 마지막 최종면접을 본 후 일주일안에 합격 메일을 받았다.

 

나는 승무원이란 직업이 자신만의 차별성을 잘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는 예쁜 친구들도 많고 마음 따뜻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 훌륭한 지원자들이 돋보이지 않는 이유는 자신만의 색깔이나 차별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뚜렷한 목표가 없는 면접 준비와 외모에 대한 강한 집착보다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상태를 잘 파악해서 어필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약점 또한 극복하면 감동적인 나만의 스토리가 되고 그 과정들을 통해서 자신만의 이미지,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사회적인 편견으로 보면 나의 사회복귀는 생각지도 못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같이 평범하고 나이 많은 지원자가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이라는 이름에서, 또한 엄마라는 이름에서 갖게 하는 성숙함과 강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갖고 있는 약점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나만의 스토리가 되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이 말의 의미조차 몰랐던 거 같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할 만큼 값진 것이다. 그 고생들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적금처럼 하나 둘씩 쌓여 여러분의 미래에 날개를 달아주고 더 높이 더 오래 날수 있게 도와줄 동반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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