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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열정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5,611

장려상 / 해외인턴

열정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강병욱 [홍콩 | 홍콩 레스토랑 셰프]

 

 

어릴 적부터 나의 꿈은 군인이었다. 경호원으로 군 생활을 하던 중 사고로 무릎을 크게 다쳐 직업군인이라는 꿈을 접고 전역하게 되었다. 전역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본으로 잠시 다녀오게 되었다. 여행 도중 너무 배가 고파 조그마한 라면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네 명의 요리사가 있었는데 라면을 먹고 나오는 내내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일하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일에 대한 자신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영어의 높은 벽을 실감하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군 입대 전 다니던 4년제 대학을 자퇴하고 인천에 있는 2년제 대학 조리학과에 들어갔다. 남들이 보기에 어떨지 몰라도 나는 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는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나이도 많았기에 모범적인 형, 오빠가 되고 싶었다. 실습 시간에는 가장 먼저 조리실에 들어가 재료를 체크했고 각종 요리 대회에 나가 수상했다. 졸업할 때는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을 받았다. 졸업을 준비하던 당시 교수님으로부터 정부에서 조리학과, 관광학과 학생들에게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청했고 마지막 면접 인터뷰만 남겨 두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큰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영어 울렁증이었다. 공고를 졸업한 나에게 영어 인터뷰는 너무나도 큰 산이었다. 인터뷰실 문을 열고 들어가 원어민 면접관을 보자마자 머릿속은 백짓장이 되었다. 열 명의 지원자 중 마지막 번호였던 나는 앞의 지원자들의 얘기를 차례로 듣고 있었다. 자기소개를 하는데 전부 서울에서 손꼽히는 명문 대학을 나온 학생들이었다. 내 차례가 왔다. 어찌어찌 자기소개를 넘기자 면접관이 일본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면접관은 천천히 다시 질문해 주었지만 나는 이미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다른 지원자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그날부터 다음에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해 마지막 인터뷰에서 나는 정부 지원 해외인턴에 최종 합격했다.

 

 

 

첫 해외 직장 생활

 

 

여러 나라의 레스토랑과 면접을 본 뒤 홍콩에 있는 한식당으로 파견되었다. 일식을 배우고 싶었지만 첫 해외 경험이기에 한식당으로 파견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홍콩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자그마한 식당이었다. 홀 서빙 직원도 한국인이라 적응은 쉬웠다. 사장님이 나에게 원한 것은 주방 일을 하면서 다른 직원들을 가르치고 문제가 생기면 자신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 주방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모두 외국인들이었고 이전에 요리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다. 심지어 칼질도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위생이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주변은 정말 더러웠다. 그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위생에 대한 생각을 무시하고 거부했다. 홍콩이기 때문에 이해해야 한다는 게 사장님의 대답이었다. 요리사는 흰 조리복을 입고 손님들에게 돈을 받고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이다. 흰 조리복은 위생과 청결을 의미한다. 내 양심을 팔고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는 없었다. 홍콩에 도착한 지 15일 만에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당장 일자리와 집을 구해야 했다. 할 일이 너무 많고 해외에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도 점점 커져 갔지만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최대한 정장과 비슷하게 차려 입고 홍콩 중심가를 돌아다니며 레스토랑마다 이력서를 내밀었다. 가방에는 복사한 이력서 수십 통이 들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새벽까지 인터넷을 뒤져 가며 일을 구했다. 일식당 셰프가 화를 내면서 너는 한국인이라 일본 음식을 못한다며 쫓아낸 적도 있었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갔고 지쳐 갔다. 어렵게 합격한 정부지원 해외 인턴을 이렇게 끝내고 돌아가야 하다니, 자존심 따위는 모두 없어졌다. 그러던 중 나의 이력서와 행동을 흥미롭다고 여긴 한 셰프가 같이 일을 하자며 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주었다. 홍콩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프랑스 레스토랑이었다.

 

 

 

두 번째 직장,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내 인생에서 이렇게 유명한 곳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전에 내가 일했던 곳과는 차원이 다른 품질의 재료와 처음 보는 재료들이 수두룩했다. 홍콩은 모든 식재료를 수입하기 때문에 세계 각지의 재료를 직접 보고 만질 수 있었다. 예전에 책으로만 봐 오던 식재료를 직접 보고 사용하니 요리사인 나에게는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나는 셰프를 생각해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출근 한 시간 전에 나와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영어를 잘 못했던 나는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하나의 고문관이었다. 모든 실수는 나의 실수로 돌아왔고 나는 항상 yes라는 말만 하는 바보가 되었다. 점점 왕따가 되어 갔고 그런 내가 보기 싫어 쉬는 시간에는 항상 화장실에서 밥을 먹으며 영어 공부를 했다. 점점 일하는 시간이 두려워졌다. 그들에게 비웃음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내가 여기서 참지 못하고 그만두고 나가면 나를 받아준 셰프에게 죄송하고, 다음에 들어올지도 모를 다른 한국인에게 피해가 갈지도 몰라 하루하루 웃으며 버텼다. 하지만 몸이 버티지 못하고 몸살이 났다. 같이 일하

는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하루를 걸러 출근을 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지만 나에게 괜찮은지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뒤 셰프가 나에게 병원 진단서를 보여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돈이 없어 간단한 약을 먹고 잔 게 전부였다. 셰프는 나의 말을 믿지 못했다. 그저 내가 일을 나오기 싫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해고당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정말 서럽게 울었다. 인종이 달라도 묵묵히 일하면 인정받을 줄 알았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그 후로 약 일주일간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다시 예전과 똑같은 상황이 되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예전처럼 다시 무작정 일을 구하러 다녔다. 예전에 한 번 해 보았기에 더 당당히 들이댔다. 그리고 한 셰프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곳은 세계에서 네번째로 높은 빌딩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미슐랭 투 스타 레스토랑이었다. 셰프는 나에게 이곳에서 일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다만 월급도 없고 보험도 없고 식사 제공도, 숙소 제공도 없다고 했다. 난 돈이고 숙소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일을 배우고 싶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홍콩에서의 세 번째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예전과 조금 다른 점은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리를 배운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아침은 과자를 먹고 점심은 햄버거를 먹으며 생활했다. 아침엔 항상 가장 먼저 식당으로 와서 청소부터 시작해 행주 정리, 도마 정리까지 끝마치고 셰프들을 기다렸다. 이런 모습을 본 셰프는 가끔 일을 마치고 한식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시키라고 말했다. 정말 배가 터지게 먹었다. 홍콩에서, 그것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셰프와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모은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곳에서 일을 했다. 신기하게도 마지막 날이 나의 생일이었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제일 나쁜 말이 바보라고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했고 케이크엔 ‘HAPPY BIRTHDAY 바보라고 적혀 있었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났다. 두 번째 레스토랑에서의 실패 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이 사람들은 나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 당시 나는 흔히 말하는 빽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뿐이었다. 외국의 레스토랑에 들어가 나를 고용해 달라고 하는 것은 참 창피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계속 두려워하며 멈춰 있으면 진전이 없다. 나는 노력으로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앞으로 영어 공부를 조금 더 하면 어디를 가든 성공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셰프는 나에게 좀 더 남아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해외 생활

 

 

한국으로 돌아와 영어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그러면서 계속 다른 나라의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러던 중 정말 꿈같은 일이 생겼다. 내 인생에서 꼭 한 번 일해 보고 싶은 곳, 미국 마이애미의 노부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해 보자는 제안이 온 것이다. 모든 관문을 통과하고 마지막 대사관 인터뷰만 남겨 두고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비자를 거절당하고 미국에 가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좌절이 찾아오려 할 때쯤 노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두바이의 일식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왔다. 4개월의 준비 끝에 나의 두 번째 해외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랍 에미리트는 정말 신비로운 나라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래사막뿐이고 그 위로 항상 모래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 한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큰 빌딩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과 노동자들로 넘쳐난다. 두바이에 와서 일을 하면서부터 동남아시아 노동자들과 접촉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들은 40도가 넘는 온도에서 도로를 만들고 빌딩을 짓는다. 몸은 온통 모래 범벅이고 땀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들과 같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인상이 찌프러진다.

나도 처음엔 그들에게 미소 한 번 던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사막 안에 파이프를 심는 공사 현장을 지나게 되었다. 선풍기 하나 없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다 문득 최근까지 사우디아라비아나 리비아의 사막에서 일하던 한국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택시 창밖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전해져 왔다. 그동안 그들을 무시하던 나의 모습이 예전 우리의 아버지들을 힘들게 만들던 누군가의 시선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그들을 만나면 웃음을 지으며 안부를 묻는다. 겉모습이 좋지 않더라고 그들은 분명 누군가의 가족이고 아버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열정은 어떤 두려움도 이길 수 있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세계에서 100위 안에 들어가는 일식 레스토랑이다. 나의 열정을 알아주는 셰프와 일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노부의 두바이 지점 20주년 행사에서 일을 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얼마 뒤면 나는 다시 홍콩으로 돌아간다. 홍콩 생활 도중 만난 외국인 친구가 새로 오픈하는 레스토랑에 나를 추천했다. 나는 그 곳에서 부주방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홍콩은 나에게 큰 아픔을 주었던 곳이다. 홍콩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는 홍콩에 오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했었다. 하지만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묘하다. 내 나이 스물일곱, 부주방장이라는 타이틀이 아직은 부담스럽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첫 해외 생활을 하며 나는 열정은 어떤 두려움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무시당하고 왕따 당할 때는 참 힘들었지만 모든 걸 참고 버티고 나니 지금 이런 기회가 왔다. 대한민국 모든 청년들이 어떤 힘든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믿고 앞만 보며 전진했으면 좋겠다. 모든 대한민국 청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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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총1건)

이은강 (2015-11-11)
끈질긴 자신감과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존경스럽습니다. 소중한 교훈이 담긴 글,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